2002년 무렵에 스위스 학생 스테판이 쿤스트아카데미 뮌스터 우리 클래스에 교환 학생 자격으로 오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스테판과 친해지게 되어 작업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밥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학교 전시 룬트강을 앞두게 되었고, 스테판의 그림자를 찻잎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는데, 평소에 차(茶) 마시는 것을 즐기는 스테판이 우리보다 더 동양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 동기가 되었다. 먼저 스테판을 교내 사진 스튜디오에 데리고 가서 여러 포즈를 취하게 하고 촬영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포즈의 실루엣을 작업에 이용했다. 작품 높이가 5m가 되어 학교에서 가장 높은 벽을 선택해서 설치를 시작했다. 작품 앞으로 공간이 넓지 않아서 전체 실루엣을 보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며 주변에서는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당시 미얀마에 다녀오신 지인께서 찍어오신 좁은 실내에 설치된 거대한 불상의 사진을 떠올리며 전체를 조망하기 힘든 공간에 들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큰 조형물을 마주쳤을 때의 느낌처럼 이 찻잎 그림자와 마주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여담으로 이 작업 바닥에는 설치 과정에서 떨어진 찻잎이 조형적으로 재미있어서 그대로 두었고,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아침마다 깨끗이 쓸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자리에 찻잎을 뿌렸는데,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그분이 “아! 이 찻잎도 작품(Kunst)이구나!” 하고 느끼셨는지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찻잎을 쓸어버리지 않으셨다.
찻잎 설치를 하면서 선반과 선반 사이에 찻잎의 반사광이 생긴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는 이후에 사진 이미지의 반사광을 이용하는 ‘Lichtbild’ 시리즈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