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곡미술관이 30주년 기념을 맞이해서 14명의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나는 어떤 작품을 제작, 출품할까 고민하다가 미술관 뒤 정원에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조각상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미술관 정원의 조각들은 그 동안 미술관이 지키고 후원해온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커피 향을 전시장 전체에 가득하게 하는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바람이 불면 흩어져버릴 위태로운 긴장감도 자아내는 그림자 이미지인 것이다.

선반구조는 한 판으로 할 수 없으므로 여러개의 판으로 제작하여 현장에서 조립한다.

전시 이후에 커피가루는 털어내고 선반구조는 미술관에서 소장하기로 해서 찻잎이 놓일 그림자 부분을 먼저 표시했다. 이렇게 표시를 해 놓으면 언제든지 다시 커피가루를 표시된 곳에 올려 설치할 수 있다. 빔프로젝터로 이미지를 투영하고 작업하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보이는 그대로 표시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터는 그저 한 줄 한 줄 커피가루를 올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 작업은 작가 당사자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최근 한 미술 관계자가 질문해왔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손이 어느 정도 섬세한 사람이라면 내 설명과 시범을 통해 설치를 충분히 도울 수 있다. 결국 의지와 예산의 문제일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화와 예술이란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의지와 여력이 있는 사회에, 딱 그만큼만 허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