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aflex

벨기에에서의 첫 개인전에 필립 판 카우테렌(Philippe van Cauteren1)이 나의 작업에 대해 쓴 글이다. 필립은 벨기에의 유명한 블라인드 회사의 이름이 Luxaflex인데 단어의 뜻이 빛과 반사의 의미를 담고 있고 블라인드 형태도 내 작업과 유사하니 글의 제목으로 Luxaflex를 썼다고 했다. 나는 그 단어가 맘에 들어서 이후 광고 전단지의 반사광을 사용하는 작업 시리즈에 사용하기도 했다.


룩사플렉스: 이창원 작품의 고찰

필립 판 카우테렌, 벨기에 겐트 S.M.A.K 예술 디렉터

19세기 사진의 발명이 회화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 큰 영양을 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현대 미술 전시들이 이 두 매체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하나로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끊임없이 가늠하였지만 조소가 회화나 사진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다루어진 적은 없다. 한국의 작가 이창원(1972년 서울 생)의 작품은 이 세 매체로 이루어진 팽팽한 삼각구도에 기초해 있다. 그의 작품은 조소의 개념과 제작 방법에서 출발하지만 그 형태는 회화와 사진 사이에 모호하게 자리잡고 있다. 회화, 혹은 사진으로써, 이미지와 재현,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98년 독일로 가기 전 서울에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은 주로 점토, 목재, 스틸, 석재,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아우르는 전통적인 방식의 조소였다. 그러나 유럽대륙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은 그에게 조소적 재료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의 새로운 실험에는 차나 커피, 옥수수 가루, 오렌지, 소시지나 인화된 사진들이 재료로 사용되었다. 식재료를 이용한 작업들은 후에 최초의 가로 블라인드 형태의 조형작업으로 이어졌다. 차나 커피, 옥수수가루 등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은 벽에 평행하게 고정된 나무 프레임 위로 나타나고 <Stefan, The Man of Tea, 2003>, 조소로 보였던 작품이 이차원적 평면으로 벽에 펼쳐진다. 차의 향기는 사람의 형상만큼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관람자는 작품과 자신 사이에 정확한 위치를 상정하여 서야만 사람의 형상은 볼 수 있다. 차와 커피의 조소적인 배열과 나무 프레임의 패턴은 게슈탈트의 맥락에서 해석 가능한 형태를 창조해 낸다. 이것은 실제 작품이 만들어낸 형태가 아닌 빛의 반사작용의 효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차나 커피로 만들어진 작품에서 사람 형상이 비현실적으로 재현된 것은 재료의 물성이나 촉감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물질성이 강하게 나타내지만, 인화된 사진을 재료로 사용한 작품들은 이러한 물질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나무 프레임에 붙여진 사진들이 이룬 명확한 리듬과 세련된 공간조형은 직접적인, 혹은 반사된 빛을 통해 환각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비로소 사진과 회화 사이의 가는 줄 위에서 균형잡힌 줄타기를 하게된다. 회화나 사진매체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빛과 그 반사작용이 ‘Leitmotif(주요하고 반복적인 모티프, 악상)’로 등장한 적은 없지 않은가? 작가는 회화적 장르의 맥락에서, 일상의 물체들을 수학적이고 광학적인 정확성으로 다룸으로써 이 모티프의 의의를 시사한다. Thomas Ruff의 사진작업을 연상시키는 다소 기념비적인 자화상<Lightbild, 2003> 과 더불어 작가는 친구들과 지인들의 모습을 작은 초상화 연작 <10 Portraits, 2003, 각 50X50cm>으로 제작하였다. <Sunflower,2003>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후광은 강렬히 빛나고, 2003년 작 <5 Cleaners>는 앤디 워홀의 수프 캔 연작의 기억을 되살려 생생히 느껴지게끔 한다. 일상의 소재는 이창원의 빛과 사물의 지각, 현실과 예술의 긍정적 반상이 되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며, 전체가 부분의 성질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부분의 기능은 전체에서 그 위치와 역할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게슈탈트 심리학 이론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불완전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채워넣게 하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개인은 실재로 존재하는 듯 보이는 형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또 이 받아들임의 과정이 환각, 즉 그럴듯하게 재현된 거짓을 보는 것에 불과한가? 우리는 지각하는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일까? 이창원은 이 물음들에 대한 얼마간의 답과 더불어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다.


Luxaflex

A consideration of the work of Changwon Lee

It is well-known that the development of photography in the 19th century had an immense influence on the necessity for and possibilities of painting. Exhibitions show an obsessive examination of the way the two media influence and merge into one another in contemporary art practice. The impact of sculpture on painting and photography has not been so thoroughly examined, however. The work of the South Korean artist Changwon Lee (born in South Korea, 1972) lies in this triangular area of tension between the three art forms. His works arise out of a sculptural concept and process but ‘appear’ as ambivalent objects somewhere between painting and photography. As painting and/or photography they raise questions about the boundary between image and representation, illusion and reality.

Before Changwon Lee came to Germany in 1998, he worked in Seoul as a classical sculptor in a range of materials: clay, wood, steel, stone and plaster. His stay on the European continent and the new experiences it brought him gave a new direction to his sculptural interest in materials. Such things as tea, coffee, cornflour, oranges, sausages and photographic prints became the substance of his new sculptural experiments. It was these experiments with foodstuffs that led the artist to his first Venetian blind constructions. The human figures in tea, coffee or cornflour were made on wooden frames fixed parallel to the wall (Stefan, The Man of Tea, 2003, 550 x 340 cm). What had been conceived as sculpture appears as a two-dimensional object on the wall. The aroma of the tea is at least as transient as the appearance of these images of the human figure. It is only in the precise and unambiguous position of the viewer with regard to the ‘object’ that the human figure takes shape. The sculptural arrangement of tea or coffee and the pattern of wooden frames are translated into a recognisably interpretable ‘Gestalt’. Or is it the reflection of light that makes the material readable?

In the works with tea and coffee the unreal appearance of the human figure is still linked to the materiality and texture of these substances. The image that appears still has a tangible body. But when Changwon Lee uses pieces of photographic prints, something more like total dematerialisation (‘desculpturalisation’) occurs. It is the precise rhythm and spatial articulation of the strips of photo stuck on wood which, through the medium of light and reflected light, allow the hallucinations of form to appear. It is in this series that Lee balances most steadily on the thin rope between photography and painting. Is it not so that both painting and photograph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ir own development, have each known light and reflections as a continuous Leitmotiv? Lee reflects on the significance of this Leitmotiv by rendering ordinary everyday subjects with mathematical and optical precision in genres with painterly connotations. In addition to a monumental self-portrait (Lichtbild, 2003, 226 x 190 cm) which is reminiscent of the photographic work of Thomas Ruff, the artist has made a series of smaller portrait studies of friends and acquaintances (10 Portraits, 2003, each 50 x 50 cm). In Sunflowers (2003, 90 x 70 cm) the halo of Vincent Van Gogh shines through. In the 5 cleaners series from 2003, the memory of Andy Warhol’s Soupcans makes itself felt. Direct everyday subjects become Changwon Lee’s positive reflection on light, perception, reality and art.

Gestalt psychologists take it as read that the quality of a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and that it deter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parts. The way a part functions depends on its position and role in the whole. Plenty of research has been done in gestalt psychology in which people complete forms that have been drawn or are shown only incompletely.

Whether individuals tend to perceive forms that do not present themselves as real: perception as a process in which illusion becomes the reality of a lie. Is what we perceive also truly that which is seen? Do we actually see what we perceive? Changwon Lee seems to give us some answers to this. But he also leaves us with just as many new, unanswered questions.

Philippe van Cauteren – artistic director of S.M.A.K. in Gent, Belgium-


  1. 벨기에 겐트 소재의 S.M.A.K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