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독일 벼룩시장에서 1981년 판 샤갈의 스테인드글래스 도록을 구입했었다. 도록에는 샤갈이 그의 성당유리화를 구상하는 드로잉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도판이 들어있다.



당시 구입한 도록을 집에 가져와 열어보니 필기체로 쓴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도록 안에 끼워둔 채로 세월이 흘렀다. 최근에 지피티를 사용하다 그 편지 생각이 나서 번역을 부탁했다. 놀라운 것은 최근에 깨달았던 어떤 생각이 이 편지에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번역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른테브뤼크, 1983년 8월 12일
존경하는 교수님께,
얼마 전 바트 베를레부르크에서 열린 샤갈 강연 이후, 우연히 교수님의 인상주의 강연 소식을 보고 다시 한번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베를레부르크에 사는 것도 아니고 약사로서 야간 근무도 많아 이런 강연에 항상 참석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기회가 되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인상주의를 설명하시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변화, 사진기의 발명, 산업화, 그리고 빛과 시각의 문제로부터 인상주의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림 속 사물이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빛과 시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보이는 인상이라는 생각이 제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실제로는 눈이라는 작은 어두운 방 안에 비친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말씀은 잊을 수 없습니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어왔던 제 생각이 흔들렸고, 오히려 그림이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은 그림이 눈앞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 마음속에서 어떤 울림을 일으키는가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네가 성당과 건초더미를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렸던 이유, 드가가 무대 뒤에서 무용수들을 스케치하며 선의 흐름만 남겼던 이유가 그제서야 이해되었습니다.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한순간을 붙잡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그것이 저를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편지 2쪽)
저는 오랫동안 고전 회화만을 사랑했습니다. 보티첼리, 뒤러, 그뤼네발트, 안젤리코 같은 화가들의 명확한 형태와 상징, 종교적 질서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샤갈 강연(1982년), 그리고 이번 인상주의 강연을 통해, 저는 현대 미술을 두려워하거나 멀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를 새롭게 보는 용기이며, 보는 이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샤갈의 유리창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7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그의 작업을 보며 감동했는지도 떠올랐습니다. 예루살렘 병원 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이스라엘 12지파), 취리히, 마인츠(1978)의 유리창들—그 안의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안에 인물들이 흡수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빛 자체가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감동을 교수님께도 나누고 싶어 예루살렘 유리창 도록 책을 동봉합니다.
(편지 마지막)
교수님, 예술은 제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아름다움이란 완벽함’이라고 믿고 있었고, 현대미술은 무질서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보는 눈과 마음을 여는 일이다.”
그리고 그 눈을 여는 데는 기술보다 믿음과 사랑이 먼저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감사를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그저 이렇게 작은 편지와, 예루살렘 유리창 책 한 권으로 제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을 담아,
알려지지 않은 여성/약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