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갤러리 시몬에서 개인전 “그림자의 주인(Shadow Casters)”을 열었다. 2005년에 제작했던 ‘성스러운 빛(Holy Light)’를 이용해서 공간에 이동식으로 배치할 수 있게 재제작했고 그 작업을 시작점으로 해서 연작을 만들어가면서 전시를 구성했다. 아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썼던 글이다.
빛에는 근원이 있고 그림자는 그 주인이 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이후로 모든 진화하는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빛과 그림자에 반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세포 속에, 유전자 속에 누적되어서일까, 누구나 빛을 보면 그것의 근원을 유추할 수 있고 그림자의 주인이 무엇인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내 작업 중에서 Parallel World라는 설치작품을 평(評)한 어떤 글에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언급되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그 비유를 형상화한 흥미로운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동굴에는 사슬에 묶여 평생 자신의 앞만 볼 수밖에 없는 죄수들이 있고 그 뒤로는 모닥불이 있다. 그 둘 사이에는 사물을 이용해서 죄수들 앞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장치(Shadow Casters)가 있는데, 죄수들은 평생 눈앞에 펼쳐진 그림자만 보았기 때문에 그림자라는 현상의 근원을 파악할 수 없고 그림자라는 환영을 실체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도식이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곧 현상의 근원을 볼 수 없게 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모든 것이 이미지화되고 표면화되며, 현상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은 숨겨지고 보이지 않는- 현대사회까지 반영하는 여전히 유효한 일종의 세계상(Weltbild)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장치가 은연중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의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각자에게 형성된 세계상이라는 이미지, 상징은 반드시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반영된다.
그렇다면 작가(artist)는 어떤 장치를 만드는 사람들일까? (작업노트 중에서 2014)
1F
군 복무 시절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군대 성당의 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조립식 건물의 멋대가리 없는 창문에 유럽식 스테인드글라스를 흉내 낸 이미지와 패턴으로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마감한 것이 전부였다. 작업이 끝나고 평범했던 빛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면서 건조하기 그지없던 공간이 성(聖)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예전보다 신성해진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빛의 조율로 어느 한 공간의 성격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공간의 신성함, 성스러움은 조율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2005년 일상생활에서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 용기들을 모아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을 내는 작품(Holy Light)을 독일에서 발표했다. 특정한 공간을 신성하게 만드는 장식으로서의 스테인드글라스라기보다 관객들이 성스러운 빛과 그 현상의 근원 사이를 오가며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장치(reflective instrument)로서의 설치작품을 의도했던 것이다.
-인간은 현상의 이면을 파악하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이성의 존재면서 동시에 현상에 매혹되고 속아 넘어가는 감각의 존재, 모순의 존재다. (작업노트 중에서 2014)
2F
인터넷과 매체라는 창문을 통해 언제든 그곳의 이미지를 펼쳐 볼 수는 있지만, 전쟁, 이념, 방사능과 같은 벽에 막혀 현실의 차원에서는 갈 수 없는 도시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면 가 닿을 수 있을 실재하는 그 도시들은 매체가 전달하는 이미지의 창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이곳과는 상관없는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의 차원에서는 각각 동떨어져 차단되어있는 쇼케이스라는 프레임으로부터 투영된 4개의 도시의 상(像)이 환영의 차원에서 하나의 도시처럼 이어진다. (작가노트 중에서 2014)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미술소장품이 경매에 올라온 뉴스가 신문지면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기사에는 그 일가의 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다는 둥, 소장품들이 모두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둥 떠들석 하였다. 그 기사들을 읽으면서 미술이란 권력과 부의 장식품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소장품 중에는 하얀 천사가 보석으로 만들어진 거울을 들고 있는 에인절 오브 더 미러 라는 공예품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마치 동화속 마법의 거울처럼 주인에게 어떤 도시의 상(像)을 끊임없이 비추는 상상을 했다.
-성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것의 근원에는 종종 그 반대의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반대의 것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피어나는 꽃처럼. 그 두 세계는 반대말이며 적(敵)인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작업노트 중에서 2014)
3F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떠내려가 섬 만한 크기로 떠다니기까지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중국에서 떠내려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안선에 밀려온다고도 한다. 문득 나는 그 플라스틱 조각들을 백지와 같은 공간에 표시해 육지(대륙)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세계지도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세계지도를 그려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세계지도를 상상할 때 육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육지 이외의 공간은 빈 공간이다. 빈 공간에는 주로 쓰레기를 버리게 된다. 우리는 바다를 하염없이 무언가를 버려도 되는 빈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업노트 중에서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