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 큐레이터
이창원의 근작 ‘평행 세계(Parallel World)’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꾸준히 인지도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모리미술관의 맘 프로젝트(MAM Project)의 17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행보는 이미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이창원 작가의 여러 가지 작업 프로세스는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할 무렵부터 정평이 나있었다. 그렇다면 일견 보기에도 경쾌하고 재미있기 그지없는 작가의 작업세계는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인가?
이창원 작가는 1972년생이다. 80년대의 뜨거운 분위기가 아직 확실하게 시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90년대 초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사회에 팽배하지 않았던 무렵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이 작가는 점토나 화강석이나 오석과 같은 석재, 그리고 나무재료, 철과 석고와 같은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주지와 같이 이러한 작업을 학생시절에 탐구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재료의 물성(物性)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며, 또 하나는 형식주의적 탐험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존재하기 위한 타당한 토대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어째서 순수성(purity)이 중요한 문제이며 예술에 있어서 본질주의(essentialism)가 예술의 역사 내부에서 어떠한 각고의 노력과 투쟁의 담론을 거쳤는지 확실히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토대에 대한 성찰 없이 형식 자체에 매몰되었던 작가를 목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1985년은 아주 의미 있는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 당시 어떤 특정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해외유학과 여행의 자율화가 이루어지던 시기라는 점에서 미래를 향한 잠재적 씨앗이 배태된 상징적인 한 해였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시기 미국은 사회분위기가 70년대의 사회정의나 반전, 인종차별 철폐를 통한 자유의 실현 등을 기치로 내걸었던 진보적 분위기로부터 대적적(對敵的)으로 전환되어버린다. 대외적으로 강권정치를 펼치는가 하면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내세우고 엔터테인먼트를 육성하면서 우민화 정책을 시행하는 등 급속한 우경화로 바뀌어갔다. 당연히 현대미술이라는 장르도 스펙터클하며 장려(壯麗)한 미감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본질주의나 예술의 철학적 사고를 지양하게 된다. 보편적 가치체계의 설정보다는 특수한 미감 자체를 즐기는 설치미술과 미디어 예술이 줄을 잇고 탄생했다. 우리의 미국 유학파들이 받아들인 내용들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대분위기였다. 이 시절의 유학생들이 90년대 대거 귀국하면서 한국미술을 이끈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랬겠지만 이러한 학습분위기 속에서 이창원 작가도 90년대 후반까지 결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1999년에 독일 뮌스터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뮌스터라는 도시는 조각의 도시로 유명하다. 온갖 재료와 물성, 그리고 형식적 아름다움이 내뿜는 도시 분위기에서, 그리고 미술사를 잠식(蠶食)하는 빅네임들의 아우성 속에서 작가는 압도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형식주의와 물성에 매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작가는 당시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거장 기욤 바일(Guillaume Bijl)을 만났다. 작가는 이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사사 받으면서 인식의 대전환을 모색할 수 있었다. 기욤 바일의 철학적 대전제는 실재와 가상의 구분 및 경계 설정이었으며 또 이 경계를 애매하게 조장함으로써 우리의 인식과 지식이라는 확실성의 체계에 대해서 회의적 질문을 가하는 반성적 성찰에 있다. 당연히 작가도 이러한 인식적 훈련에 감화되었을 것이다.
서구의 인식론과 동양의 인식론의 근원적 차이점을 찾으라면 그것은 당연히 다이커터미(dichotomy)에 있을 것이다. “성인은 초월적 세계가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문구가 장자의 ‘제물론(齊物論)1’에 등장한다.1 눈에 분명히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일상의 현실 이외에는 논하지 않겠다는 고대의 합리주의적 사고관이다. 그러나 서구의 인식론은 파르메니데스가 헤라클레이토스를 압도한 이래로 세계를 현상계(phenomena)와 본체계(noumna)로 나누어 파악한다. 현상계는 가시세계(可視世界)일 것이며 본체계는 가사세계(可思世界)일 것이다. 여기서 가시세계는 또다시 일상의 대상과 그림자의 환영으로 구분될 것이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이미지는 바로 그림자의 세계이며 이것은 아주 부정적 맥락으로 쓰였지만, 어쨌든 이미지에 대한 인류 최초의 사유일 것이다. 독일에서 작가가 벌였던 최초의 프로젝트 작업은 이 가시세계의 두 가지 요소로써 자신이 파악하는 세계의 가치체계를 표명하는 방법론이었다.
이때 작가는 3차원적 캔버스를 발명했다. 사방이 견고한 직사각형 프레임의 내부에 평행한 직선의 판을 순차적으로 병렬시킨 다음 그 직선 판 위에 코코아나 옥수수 가루, 차나 커피를 올려서 환영을 구축하는 방법론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인체 전신상이나 해바라기, 다중의 초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일상의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장려한 스펙터클의 미감이 압도적으로 즐거운 작업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퇴색해버리는 차의 아로마 향기나 커피 내음의 일시적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 시리즈는 더 나아가 현상계가 지니는 일시성(transiency)의 덧없음(ephemerality)을 떠나서 세계에 대한 ‘진리의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 없으며 인간은 오로지 세계가 어떻게 생겼다는 ‘믿음의 체계’만을 구축해왔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려는 그랜드 프로젝트였다.
위에서 이야기한 프로젝트에서 진일보한 작가의 연구 방법은 2009년 무렵에 더 할 나위 없이 성숙했다. 작가는 빛 자체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신작의 방법론에 대해서 플라톤 역시 언급했었던 동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연상했다고 발언한다. 상식이 전하는 바 빛은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모든 것을 비추는 복음이다. 로고스에 있어서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무차별의 평등이며 기쁨의 원천이다. 작가는 참으로 기발한 발상을 한다. 탁자 위에 일간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헤드라인 기사를 올려놓는다. 이때 작가는 아주 특별한 장치를 설정한다. 르몽드나 알게마이네 차이퉁, 환구시보, 아사히 신문, 조선일보의 일면기사의 내용은 정치적 테러나 환경 재앙, 금융위기, 글로벌리즘의 승리와 좌절, 국가의 홍보, 국내외의 불유쾌한 사건들로 채워지기 일쑤이다. 진정 작가의 테이블은 인간사 모든 문제의 끝없는 나열로 채워진다. 그러나 작가는 특정 부분을 칼로 오리고 그 면에 거울을 장착시킨다. 이때 테이블 위의 LED 조명은 거울에서 반사되는 이미지를 공간의 저편으로 부유시킨다. 경쟁주의와 온갖 사건들이 난무하는 현대생활과 대조적으로 빛이라는 로고스는 우리의 태초적 환희의 경험을 소환해낸다. 마티스의 댄스, 동굴벽화를 연상시키는 동물들의 환영, 새들의 비행, 비행기와 선박의 여행 등 인류가 지속해야만 하는 희망의 예시들이 환영처럼 빛을 발한다.
나는 작가의 이 기념비적인 작품 시리즈의 원천은 2005년의 ‘성스러운 빛(Holy Light)’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종이 뒷면에 온갖 토드리(tawdry)한 플라스틱 생활용품들을 방사형으로 설치한다. 형형색색의 목욕용품과 가사용품은 일상의 진부한(commonplace) 세계일 것이다. 여기 뒷면에 강한 빛을 비춘다. 그리고 이내 관찰자가 바라볼 의미 있는 앞면의 모습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성스러운 빛의 세계로 변모한다. 물질의 속성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작업으로부터 의미의 완전한 형질변경을 이루는 것이 작가 세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물질과 의미의 형질변경을 수행함으로써 작가가 이루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해방(liberation)’이다. 부박(浮薄)한 플라스틱이라는 개념, 일상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타파시키는 것, 속계(俗界)라는 울타리에 갇혀버릴 운명의 진부한 모든 것들을 해방시키려는 의지야말로 작가가 진정으로 가슴 속에 품는 지향성이다.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莊子』「齊物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