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개인전 제목 <그림자의 주인(Shadow Casters)>은 작가의 작업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그림자의 주인’, 즉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으로 풀이되는 이 영어단어는 전시도록에서 작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그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관련이 있다. 동굴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형상은 그들의 등 뒤에 놓인 모닥불이 인형들을 비추어 드리운 그림자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이 동굴 밖의 태양으로 대변되는 이데아와 이데아의 모사품에 해당하는 동굴 안 모닥불과 인형들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구분하고, 그림을 비롯한 시각예술은 그러한 현실 세계가 드리운 그림자이자 빛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하는 그의 세계관 및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빛과 그림자, 그 사이 매개물로 이루어진 작가 이창원의 전반적인 작업 구조는 플라톤의 동굴을 닮았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플라톤의 그것과 상이하다. 유사한 구조를 통해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전유’의 방식이 흥미롭다.
이창원의 작업에는 늘 빛이 있고, 그 빛을 반사하는 매개물과 그 매개물을 통해 드리워진 빛의 그림자가 있다. 그리거나 만드는 작가의 예술적 행위는 매개물에 가해지지만, 관객에게 일차적으로 제시되는 주요한 이미지는 빛을 통해 매개물이 자아내는 이차적 이미지인 그림자가 된다. 이러한 구조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은 거울(유리)에 그리거나 오려내어 만든 이미지를 강한 빛으로 반사시켜 공간에 그림자를 맺히게 하는 류의 전작들이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먼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벽에 맺힌 그림자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그림자를 만들어낸 원본 이미지에 관객의 시선이 옮겨갈 수 있도록 거울(유리)을 함께 제시한다. 이 때 원본 이미지와 반사된 이미지는 플라톤의 동굴 속 그것들처럼 서로 다르다. 음화로 그려진 이미지가 그림자로 비춰짐으로써 양화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의 현실적 이미지가 꿈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비현실적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동굴에서 사람들이 그림자를 만들어낸 실제 ‘그림자의 주인’을 볼 수 없었다면, 이창원의 작업에서 사람들은 그림자와 그 주인을 동시에 볼 수 있을뿐더러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확인하고 그 차이를 즐기게 된다.
초창기 주요 작업인 블라인드 설치 역시 작업의 양상은 다르지만 그 구조는 동일하다. 관객들은 흐릿한 작품의 전체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전시 공간에 들어서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 이미지의 정체가 하얀색 좁다란 패널 위에 놓인 찻잎, 커피가루, 프린트 이미지 등의 물질이 반사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술사의 대가를 비롯한 역사 속 위인들이나 신화를 비롯한 거대서사의 영웅들을 주로 묘사한 반사된 이미지는 사실상 우려낸 찻잎이나 커피 찌꺼기와 같은 일상의 하찮은 물질에 의한 일회적인 설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작업들에서 실재와 환영의 간극은 보다 극명하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업인 <성스러운 빛(Holly Light)>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어두운 전시장은 흡사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중세교회처럼 은은하고 성스러운 빛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러나 그 빛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다가가면, 그것은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용기들로 채워진 패널을 투과한 평범한 LED 광원이 바닥에 반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작가의 강조점은 전시장을 감싸는 성스러운 빛이나 그 빛을 만들어낸 매개물 자체에 있지 않고, 그러한 성스러운 빛이 플라스틱 용기라는 소비문화의 상징물에 의해 매개되었다는 반전의 사실에 있다. 그로써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라는 것이 곧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빛도, 그림자도, 매개물도 아닌, 빛을 매개하여 그림자를 드리우는 장치의 전체 구조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넌지시 건넨다. 그 시선은 구체적인 사회 비판이자 나아가 다소 추상적인 관념이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두 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먼저 <에인절 오브 더 미러(Angel of the Mirror)>라는 작품은 전두환 전(前)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등장한 스페인 공예품 <에인절 오브 더 미러>를 차용하여, 천사가 새겨진 액자거울의 표면 위에 광주의 도시풍경을 음화로 실크스크린 하고 거기에 빛을 비춰 다른 패널에 양화의 그림자로 반사되도록 했다. 이 작품으로부터 작가는 언론이 주목하는 전두환 일가의 화려한 예술품 컬렉션이 사실상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사태의 판결로 선고된 추징금의 일부분임을 상기시킨다. 한편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네 개의 도시(Four Cities)>라는 작품은, 네 개의 유리 상자에 음화로 실크스크린 된 네 개의 도시(분쟁 중인 바그다드, 방사선에 노출된 후쿠시마, 유일한 분단국가의 두 도시 서울과 평양)가 네 개의 광원에 의해 네 개의 양화 그림자로 비춰지고, 그것이 결국 하나로 이어져 새로운 도시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는 각기 다른 이유로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어 매우 익숙한 도시들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심리적인 거리감으로 실제로는 가지 않는 현실의 도시들을 가상의 이미지로나마 하나로 연결해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는 현실의 이미지를 가상의 도시풍경 그림자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 사회의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
사실상 빛과 매개물, 그것들로 인한 그림자라는 기본 구조를 지닌 이창원의 작업은 세계와 예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장치’에 다름 아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사람들은 진리의 환영에 불과한 그림자만을 바라볼 뿐 동굴 전체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창원이 제시하는 장치에서 사람들은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생성한 그림자의 주인, 즉 작가가 제작한 매개물과 그것을 비추는 빛 모두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동굴 전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그의 작업에서 그림자는 여전히 작가가 현실 세계를 빗대어 만든 인공물의 환영이다. 그러나 그 환영은 현실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이자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곧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의 본령이며 그러한 환영이 이제껏 인류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해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에 더해 이창원의 작업은 그러한 예술이 작동하는 구조 전체를 드러냄으로써 예술 자체에 대해 반성하게 하는 ‘메타예술’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제껏 줄곧 작가의 작업은 조각,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장르 구분 없이 진행되어 왔고, 한 번도 불변하는 고정된 결과물로 제시된 적이 없다. 찻잎은 바람에 흩어질 듯 가벼이 얹어졌고 그림자는 빛과 장소에 따라 변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일시적이고 변형가능하며 유동적인 작업이 보여주려는 것은 세계와 예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라는 일관된 구조와 방향으로 흘러왔다. 작가는 묻는다. “작가(artist)는 어떤 장치를 만드는 사람일까?” 그의 작업이 어느 정도 그 답을 말해주고 있다. 작가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있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현실 세계의 다양한 양상들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고유한 조형언어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그들과 나누는 장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뜻밖의 공간에서 뜻밖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확장된 시도나 공공 기획을 통해 그 장치를 보고 싶은 바람을 가져본다.
Reality and Art Mediated by Light
Hyeyoung Shin | Art Critic
The title of the artist’s recent solo exhibition, Shadow Casters, serves as an important clue to explain his world of art. As also noted by the artist himself in the exhibition catalog, the term “shadow casters,” or “owner of the shadow,” is related to Plato’s famous Allegory of the Cave. The images visible to the people imprisoned in the cave are merely shadows created by the fire behind them, shining light against their figures, and not reality. This allegory clearly demonstrates Plato’s views of the world and of art. He divides idea, represented by the sun outside the cave, from the world of reality, consisting of the fire and figures inside the cave, which are imitations of idea. Visual art, including pictures, are depreciated as shadows cast by the real world, mere illusions made by the light. The overall structure of artist Changwon Lee’s work, consisting of light, shadows and the medium in between, resembles Plato’s cave. What he is trying to say through this structure, however, is different from Plato’s view. He uses an interesting method of appropriation, saying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 through a similar structure.
In Changwon Lee’s work there is always light, the medium that reflects the light, and the shadow cast by the light and the medium. The artistic act of drawing or making is executed on the medium, but the main image presented to spectators is a shadow, which is a secondary image created by the effect of the light on the medium. Such a structure is most vividly revealed in Lee’s previous works, which create shadows in the space by reflecting strong light off mirrors (glass) overlaid with painted or cut-out images. What the viewer first notices in the exhibition space is no doubt the shadows cast on the wall. But the artist also presents the mirror (glass) so that one’s gaze eventually moves toward the original image, which created the projection. Here, the original image and the reflected image are different in nature, just like those in Plato’s cave allegory. Images painted as negatives sometimes become positive images in the reflection process, and realistic images from newspapers and magazines are sometimes transformed into fantastic images such as appear in dreams or mythology. While in Plato’s cave people could not see the actual “shadow caster” who made the shadow, in Changwon Lee’s works not only can people see the shadow and its caster at the same time, they can also openly confirm that the two are different, and enjoy the difference.
Compared to his earlier blind installation works, Lee’s recent works are different in appearance, but they share the same basic structure. In the case of his works using horizontal blinds, spectators would enter the exhibition space seeing a hazy overall image, but as they approached the work they would realize the image was actually reflections of substances such as tea leaves, coffee grounds and printed images placed on narrow white panels. The reflected images, which were mainly depictions of renowned historical figures, including masters in art history, and heroes of grand narratives such as mythology, originated from temporary installations of trifling substances from daily life, namely used tea leaves and coffee grounds. In these works the gap between reality and illusion was even more obvious. Holy Light, one of the key works of this exhibition, can be viewed in the same context. The dark exhibition hall is surrounded by subtle, holy light, like a medieval church decorated with stained glass. But as we approach the point where the light begins, we realize that it comes from an ordinary LED light source, which has passed through a panel covered with colorful plastic containers and has been reflected onto the floor. Here, the point the artist is trying to emphasize is not the holy light surrounding the gallery, nor the medium creating that light, but the fact that such holy light was mediated, ironically, by plastic receptacles—symbols of consumer culture. Thereby he metaphorically reveals how consumption in today’s capitalist society has taken the place of religion.
In this way, the artist tacitly conveys his perspective of the world, not through light, shadow or medium, but through the overall structure of a mechanism that mediates light to cast shadows. This perspective is a concrete criticism of society and, at the same time, a rather abstract idea or sense of value. This is well demonstrated by two works in the exhibition. First, Angel of the Mirror appropriates the Spanish craft art piece “Angel of the Mirror,” which emerged in the process of the Korean government’s confiscation of former President Chun Du-hwan’s property in an attempt to collect unpaid fines. Lee made a negative silk screen print of the urban landscape of Gwangju on the surface of a framed mirror with angel carvings, and projected light onto it to make a positive reflection on a different panel. Through this work, the artist reminds viewers that the extravagant art collection of the Chun family turned out to be part of the fine Chun was sentenced to pay, according to the court ruling on his orchestration of the 1980 Gwangju massacre, which took so many innocent lives. Meanwhile, in a similar way, Four Cities projects four positive shadows, which are connected to create a new city landscape. This is achieved by using four independent light sources to reflect negative images of four cities (Baghdad amidst conflict, Fukushima exposed to radiation, and Seoul and Pyeongyang, the two capitals of the only remaining divided country in the world) printed on glass via silk screen technique. These cities are quite familiar, as they have often been exposed in the media for different reasons. Though they are real cities, most people in the world do not travel to them due to their psychological distance. The artist’s intention was to connect these actual cities into a single virtual landscape, to provide viewers with an alternative experience. Both works present images of reality as shadows of virtual landscapes, and at the same time, contain the artist’s critical views on concrete incidents and situations in our society.
With the basic structure of light, medium and consequent shadows, Changwon Lee’s works are nothing but “devices” to reveal his thoughts on the world and art. In Plato’s cave, people could only see the shadows, which were mere illusions of the truth. But in the devices presented by Lee, people can see the shadow and the caster of the shadow, that is, the medium constructed by the artist and the light projected upon it. In other words, they can see the entire cave. Of course in his work the shadow is still an illusion of an artificial object made as a metaphor of the real world. But the illusion offers an opportunity to see the real world differently, and carries significance as a possibility to imagine something else. This is the proper function of art that reflects reality, and we are well aware that such illusions have given freedom and abundance to humankind. In addition, Changwon Lee’s works demonstrate the characteristics of “meta-art,” which reveals the overall structure of how art functions, and thereby enables us to reflect on art per se. So far, Lee’s work has advanced without distinction of genre, including sculpture, painting, photography, video and installation, and not once has it been presented as a fixed result that does not change. The tea leaves were placed lightly, as if they would by scattered by the slightest wind, and the shadows would change depending on the light and the place. But the works have followed a consistent structure and direction. What such temporary, changeable and fluid works are trying to show is ultimately the artist’s thoughts on the world and art. He asks: “Is an artist someone who makes certain devices?” His works provide an answer to a certain extent. An artist is someone who makes devices to share with people his thoughts and emotions concerning various aspects of the real world, which people already are aware of but have forgotten or have not yet realized, presenting them through a unique, formative language. In that sense, it is our hope to see more of such devices, created through extended attempts or public projects, which may approach a larger scope of unexpecting people in more unexpected spa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