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여화광(氣如火光), 2016

Vapours Like Fire Light, 2016, Advertisement Flyers, LED lightings, display turntables, MDF, wooden panels, wood, dimensions var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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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남양주 덕소에 위치한 갤러리퍼플 스튜디오에 입주작가로 있을 때 1층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다음은 전시 작품을 준비하면서 썼던 글과 전시광경 이미지이다.

몇 년 전에 남양주 덕소 쪽에 처음 오게 되었을 때 한 번은 음식점에서 옆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 우연히 귀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몇 억, 몇 천 만원 단위의 돈 이야기도 들렸고 땅, 집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 등도 들렸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에 온 사람들이 도심에서 가져온 관심사와 계획, 근심거리 등을 이야기했다.

이 전시장에는 그렇게 도심에서 잠시 벗어난 사람들이 근처 카페나 맛집에 왔다가 전시 현수막을 보고 종종 들르곤 한다.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곳에 들르게 되는 사람들(관객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때 음식점 옆 테이블에서 들려왔던 대화 내용들이 떠올랐다. 내가 미술 작가로서 지향하는 예술이라는 것과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연히 내 작업과 마주하게 된 그들에게(혹은 일상인으로서의 관객에게) 나의 예술 작품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항상 궁금하다.

전시 구상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조선시대에는 하늘의 범상치 않은 변화를 풍경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인간의 잘못을 하늘이 말하는 메시지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을 ‘재이사상(災異思想)’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변화를 민심의 반영으로 해석한다든지 임금의 잘못으로 여겨 신하들이 조언하거나 비판했다고 한다. 그런 하늘의 변화 중에서 기여화광(氣如火光)1이라고 기록되었던 현상이 있었는데, 영국의 어느 과학 전문지에 의하면 이 시기의 붉은 기운은 당시 조선의 하늘에 나타났던 오로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독 이 현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석 없이 묘사에 그친 경우가 많았는데, 중종실록(1507년)에는 이같은 하늘의 붉은빛의 이유를 단순한 산불에 두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신(使臣)의 논평이 적혀있다.

Vapours Like Fire Light, Idea sketch and note, quotation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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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에 따라 눈앞의 현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해석하는지가 결정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조선 시대에는 자연현상을 인간사(人間事)와 분리하지 않고 연관 지음으로써 인간사를 살피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사회가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세계에 대한 어떤 상(世界像·Weltbild)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은 반드시 현실 세계에 반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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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사광(reflected light)이라는 것이 항상 그 근원을 지시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누구에게나 시지각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작업에 이용해왔다. 그리고 하늘 위에 펼쳐지는 하늘빛의 변화(현상)가 인간 세상을 반영한다는 조선시대의 생각이 내 작업의 구조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대한민국의 산(山) 실루엣 위로 펼쳐지는 다양한 하늘빛의 근원으로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쏟아져 나오는 광고전단지의 색깔이 만들어내는 반사광을 이용하기로 했다. 광고전단지의 반사광을 작품에 처음 이용한 것은 2003년도의 Luxaflex라는 설치작품에서였다. 벽면에 블라인드처럼 좁은 선반이 나열되어있는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광고전단지를 길게 오려 붙여서 벽면과 선반의 밑면에 광고전단지의 표면으로부터 발생하는 반사광이 어슴푸레하게 비치어 멀리서 보면 광고전단지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흐릿하면서도 알록달록한 빛이 매력적인, 마치 추상화와도 같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런 광고 전단지를 모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이 시대의 온갖 욕망과 문제들이 총천연색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중세에는 신(神)에게만 허용이 되었던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신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자본과 소비(혹은 그것을 통해서 성장하는 존재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1. 조선과학실록, 저:이성규